간암 투병 중에도, 엄마는 엄마입니다
딸이 아침에 일어나서
나에게 하는 인사는
손을 흔드는 것입니다.
문을 열고
“엄마 잘 잤어?”라고 묻습니다.
어릴 적, 친구들과 놀다가
엄마가 부르면
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던
그때의 제 모습과 닮아있습니다.
지금은 인사하는 모습이
쌍둥이 아니랄까 봐 둘이 너무도 똑같지만,
어릴 때는 완전히 달랐습니다.
일 분 언니인 큰딸은
자고 일어나면 항상 기분이 나빴습니다.
일어나자마자
엄마 얼굴이 보여야 했습니다.
심술 난 얼굴이 귀여워서
엄마를 찾아올 때까지
가만히 있어 보기도 했습니다.
엄마가 곁에 없으면
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나와서
제 얼굴을 한번 보고는 무릎에 앉았습니다.
한참을 입을 내밀고
기분이 풀릴 때까지
안겨 있곤 했습니다.
막내딸은 그 반대였습니다.
언제나 기분 좋은 함박웃음을
지어 보였습니다.
잠에서 막 깨어난 얼굴은
아침을 맞는 나팔꽃 같았습니다.
활짝 핀 나팔꽃 같은 얼굴을 하고 와서는
와락 안겼습니다.
“엄마 잘 자떠!”
묻지도 않은 대답을 하며
목을 꼬옥 껴안았습니다.

암 말기 선고를 받자,
다 큰 아이들이 어리게만 보였습니다.
아팠습니다.
암덩어리보다 더 아팠습니다.
자식이 제 명치끝에 달렸습니다.
대학생인 자식들이
잠에서 막 깬 세 살 아기로
느껴졌습니다.
세 살로 보이는 딸이
가슴에 걸려
아프고 아픈 시간을 보냈습니다.
살다 보면
자고 일어났을 때처럼
엄마가 필요한 순간이 올 텐데,
저는 그 자리를 지켜줄
자신이 없었습니다.
두려움은 아기 같아서,
쳐내면 쳐낼수록
더 심하게 달려들었습니다.
딸을 바라보고 있으면,
노을 진 바다처럼
애틋하기만 했습니다.
하지만 폭풍 같은 투병 시간을
함께한 딸들은
한 뼘 더 성장했습니다.
만물이 뜨거운 여름에
성장하는 것처럼 말입니다.
바람이 담겨야 소리 나는 아코디언처럼,
딸의 목소리엔
향기가 담겨있습니다.
오늘도 엄마 잘 잤냐고 묻는 딸을 보며,
저는 바람개비처럼
손을 흔들었습니다.
저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지금은 웃고 있는
분들의 이야기도 그곳에 있습니다.→